탕.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소리에 소란스레 뛰던 심장이 덜컥 멈추어 섰다.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던 발끝이 호흡이 엇갈린 찰나를 견디지 못하고 어지럽게 뒤얽혔다. 아차, 하는 사이에 시야가 왈칵 뒤집힌다. 민호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중심을 잃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노을이 느릿하게 하늘 끝으로 번져갈 쯤, 잠깐 소낙비가 내렸던 골목길에는 아직까지 축축하게 물기가 남아있었다. 민호는 차가운 바닥에 뺨을 기댄 채 몇 번이나 깊은 기침을 했다. 그대로 멈춘 줄만 알았던 숨이 그제야 폐 깊숙한 곳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온 몸에 힘이 쭉 풀리는 것 같았다. 가물거리는 시야에 얕게 눈을 깜박인다. 둥글게 뭉치고 일그러지는 희미한 가로등 빛마저 눈이 부셨으나, 그렇다고 차마 눈을 감지는 못한 채였다. 눈을 감는 순간 피에 젖은 그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를 것 같았다. 바닥에 점점이 흩어지는 핏물, 붉게 젖어가는 네 찬란한 머리카락과 바르르 떨리는 하얀 눈꺼풀 따위가. 턱 끝까지 차오른 숨보다도, 마비될 듯 저려오는 다리보다도 그 끔찍한 상상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몇 시간 전, 결국에는 내려진 상부로부터의 사살 명령이 자신은 아직도 믿기질 않았다. 바싹 달궈진 총구는 과연 누구를 향해 겨누어졌는가. 탄환이 꿰뚫은 심장은 누구의 것인가. 너야? 정말 너야? 민호는 파랗게 질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럴 순 없어. 약속했잖아. 

‘그래. 그렇담 차라리 네가 나를 죽여줘. 네 손에 라면 기꺼이 죽어 줄 테니.’ 

손끝에 다정히 키스하며 속삭이던 네 말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이것만 기억해, 민호.’ 

나의 손을 잡아 올려 직접 네 목줄기 위를 감아쥐게 하고선. 

나는 오롯이 너의 것이야.’ 


두근두근 뛰던 네 맥박소리와 함께 들려오던 나직한 웃음소리. 이마위로 내려앉던 입술. 그 순간 민호는 눈을 감았다. 네가 그리 말했잖아. 난 기억해, 모두 다 기억해. 그러니 약속을 지켜. 살아. 어떻게 해서든 살아있어. 내가 네게 달려갈 때까지. …제발.


지직.

…원요청 바란다. howard st. 동북방향… grant ave 근처… 용의자 도주 중. …왼쪽 팔에 총상을 …었다. …지원 요청 …란다. 용의자 도주 중. 도주 중…


살아, 있어.



Alive

w.뷸(@maze_BU)




달려가는 사이 몇 번의 총성이 울렸는지 민호는 차마 세어낼 수가 없었다. 오래된 도시의 뒷골목은 헤진 거미줄 같이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가로등은 드문드문 불을 밝히고 있어 민호가 선 자리 사방으로 길게 검은 그림자를 그려냈다. 그리고 구두 밑창을 흠뻑 젖게 만든 물웅덩이를 수 없이 지나 열 몇 번째 코너를 돌았을 때쯤에야 민호는 마침내 멈추어 설 수 있었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민호는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니었다. 다만 불빛이 닿지 못하는 어둠 속에 서서 그 낯설고도 낯익은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불규칙하게 깜박거리는 가로등 아래 서 있는 것은 분명히 너였다. 네가 아닐 리가 없지. 목덜미를 가지런히 덮은 금발과 가녀린 듯 단단한 어깨, 헐렁하게 한 쪽 다리에 힘을 뺀 자세. 왼쪽 팔뚝이 찢겨져 붉게 물든 체크 셔츠는 불과 몇 달 전에 제가 선물해 주었던 것이었으니. 그러나 그 당연한 모습이 오늘따라 낯설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 제발 네가 아니길 바라게 되는 것은 왜일까. 민호는 그의 발치에 누워 있는 몇 구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소리 없는 탄식을 뱉었다. 아, 아아. 수 없이 들려오던 총성 속에서도 네가 살아남길 바랐던 자신의 이기적인 소망은 결국 이런 식으로 되돌아온 모양이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순진한 어린아이가 어질러 놓은 장난감들처럼 무질서한 사선으로 마구 흩어져 있었다. 민호는 울컥 솟구치려는 비명소리를 참아 삼키며 천천히 허리춤의 총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등을 향해 조준된 총부리가 덜덜 떨리려는 것을 애써 손에 힘을 주어 다잡았다. 그때 차마 살피지 못하고 내딛은 걸음에 찰박, 하고 물소리가 났다. 물웅덩이가 아니었다. 바닥에 온통 시뻘건 피가 고여 진창이었다. 민호는 아래로 내렸던 시선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눈이 마주쳤다. 뉴트. 민호는 입술을 뻐금거렸다. 차마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네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민호를 보며 피가 튄 하얀 뺨을 손등으로 닦아내고는 뉴트가 웃었다. 


“왔네.”

“…….”

“기다리고 있었어.”


너라면 이곳으로 달려와 줄 거라 생각했지. 뉴트는 고개를 기울이곤 낮잠에서 막 깨어난 듯 느긋한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이 자신과 아는 뉴트와 너무나 똑같아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민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자신들이 서 있는 근처를 돌아보았다. 군데군데 검게 얼룩진 회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쩍쩍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3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과 달라진 것이라곤 그림처럼 벽에 흩뿌려진, 아직 채 변색되지도 않은 핏자국 정도뿐이었다. 민호는 몇 번이나 더 그의 이름을 부르려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끝내 무슨 말부터 해야 좋을지 몰라 고개를 저었다. 뉴트는 마치 그런 민호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것 같았다. 기분이 좋을 때면 곧잘 그러했듯, 그는 입술 끝을 한참 휘어 올려 웃더니만, 그리 환하게 웃더니만. 손을 들어 민호에게 손짓했다. ‘이리와, 민호. 빛 아래로 나와 줘.’


“네 얼굴이 보고 싶으니까.”


민호는 여전히 들고 있는 총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다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저벅, 저벅, 저벅. 놀라우리만큼 적막한 좁은 길목에 낮은 인기척만 꿈틀거렸다. 마침내 민호는 빛과 어둠의 경계를 밟아 넘었다. ‘뉴트’ 그리고 그제야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한참동안이나 참아온 이름은 기대와는 달리 사막 한 가운데 오래도록 서 있었던 듯 목이 깔깔한 느낌이었다. 민호가 멈추어 섰을 때, 두 사람의 거리는 뉴트가 가벼이 손을 뻗으면 민호의 목줄기라도 틀어쥘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귀를 기울이면 서로의 숨소리가, 심장소리마저 들릴 법 했다. ‘왜 그랬어.’ 민호의 속삭임에 뉴트는 그저 짧게 웃었다.


“미안해.”

“개새끼가.”

“대신 약속은 지켰잖아.”

“지랄하네. 태연한 척 하지 마.”


끝내 참아내려 했던 감정이 왈칵 솟아올라 민호는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뻥 뚫려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러지 말자.’ 뉴트의 심장을 향해 겨눠진 총신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바들바들 떨렸다.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에 더듬더듬 내뱉는 발음이 사정없이 뭉개졌다. ‘그냥, 항복하자 뉴트. 여기서, 끝내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내가 도와줄게. 그러면, 살, 수… 살 수….’ …있을 거야, 라는 마지막 말. 혀 끄트머리에서만 맴돌다 끝내 뱉어지지 않는 애잔한 말을 숨기려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 거짓말이다. 뉴트는 이미 여러 명의 민간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분명한 혐의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 이번에는 현행범으로 붙잡혀 쫓기던 것이었기 때문에 정상 참작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도주 중에 또 다시 공무 수행 중이었던 경찰들을 살해했다. 너무나 많은 증거들이 명확하게 남아있었다. 이대로라면 사형 선고는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래도 뉴트. 나도 알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래도 살아줘.”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온 세상이 너를 살인마라 욕해도 좋았다. 네가 정말로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는 적어도 내겐 별개의 문제였다. 나에게 너는 3년 전 그날 이 낡은 벽 앞에 웅크리고 있던 가련한 이였고, 비 오는 날이면 어색한 얼굴로 경찰서까지 우산을 가져다주던, 그리곤 사랑한다 속삭이며 눈꺼풀에 얕은 키스를 내리던 연인이었다. 민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인지, 그 수없이 함께한 날들을 돌이켜 보아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알, 수가….


“그렇지만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뉴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민호 또한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 또한 특수 범죄 전담반의 경찰이었다. 언젠가부터 하나 둘 씩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그들의 은밀한 기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이었다. 민호는 흐린 눈으로 천천히 자신을 향해 뻗어지는 뉴트의 손끝을 보았다. 온 사방에 포진해 있는 어둠 속, 자신을 향해 살벌하게 겨눠진 총구들 따위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였다. 


“울지 마.”


뻗어진 그의 거칠한 손끝이 눈 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민호는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탄식처럼 흘러나온 작은 목소리. 뉴트는 덤덤하게 민호의 뺨에 남은 눈물 자국들을 지워내듯 쓱쓱 문질러냈다. 손등에 튄 핏자국이 묻지 않게끔 조심스러운 손짓이었다. 그리고 뉴트는 아주 천천히 총을 든 민호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쳤다. 그제야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깨달은 민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뉴트. 민호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이러지 마. 제발. 제발, 내게 이러지 마. 그러나 뉴트는 겹쳐진 손을 움직여 총구를 제 가슴 위로 더욱 바싹 가져다 댈 뿐이었다. 민호의 떨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뉴트는 잠깐 소리내어 웃더니, 금방이라도 울 듯 눈썹을 찡그렸다가 결국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기억하지? 나, 죽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잖아.”

“…….”

“그러니 너도 약속을 지켜.”


부디 네 손으로, 나의 이 초라한 삶을 거둬.

뉴트.

망설이지 마. 네가 영원히 나를 기억할 수 있으리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니까. 아름다운 결말은 두 사람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 아니라는 걸 너도 알고 있잖아. 사랑하는 이의 손에 맞이하는 마지막이라니, 이보다 더 극적인 결말이 어디 있겠어.

……

사랑해.

……

대답해줘.

……사…랑해.

그래, 그거면 됐어.


민호는 그 순간의 광경을 평생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느릿하게 감기는 네 눈꺼풀, 흐릿한 가로등 빛에도 찬란히 반짝이는 금빛 속눈썹, 창백하리만큼 하얀 뺨 위에 남은 불그스름한 핏자국과 자신의 손 위로 겹쳐진 흰 손가락. 허무하리만큼 짧은 총성이었다. 풀썩 제 어깨 위로 기대어지는 몸뚱이와 심장께로 왈칵 왈칵 쏟아지는 핏덩이. 한 줌의 미련조차 없다는 듯,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에 제 모든 삶을 떠넘기듯 죽음이 다가왔다. 가로등은 깜박이고 우리의 처음이었던 오랜 회벽은 여전히 무너질 듯 하면서도 굳건히 서 있는데, 너만이 기울어졌다. 너만이. 민호는 그제서야 벼랑으로 떨어지는 긴 비명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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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어지러워서 진짜 드리기 죄송한....... 싯쿠님 죄송합니다(꺼이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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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글/-메이즈러너 at 2015. 1. 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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