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러너 전력60분]눈

w.뷸(@maze_BU)


너를 처음 만난 건 진눈깨비 나리는 새하얀 어둠 속이었다. 너는 박스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처럼 어느 골목 그리 몸을 웅크린 채 있었다. 형편없이 대충 잘린 비죽비죽한 정수리가 얇고 더러운 담요 위에서 비죽이 보였다. ‘자, 토마스. 늘 해왔던 대로.’ 붉은 머리의 마사가 내 등을 떠밀었다. 따듯한 히터가 틀어져있던 차 안에서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찬바람이 불었고, 눈이 되다 만 빗물은 질척이며 신발밑창에 들러붙었다. 그리고 나는 너를 데려와야만 했다. 너를, 데려와야만. ‘어서.’ 그녀의 재촉에 나는 못이긴 발걸음을 내딛었다. 두터운 실로 짜인 스웨터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려다 녹기를 반복했다. 모자가 금세 젖어들었다. 이미 흠뻑 젖어 얼은 너의 담요는 내 목을 두른 목도리 한 겹 보다도 의미가 없어보였다. 그래도 너를 데려가기 싫었다. ‘그곳’에 가느니 차라리 이 어두운 골목이 너에게 안락한 삶일지도. 그거 알아? 내가 지금 너를 데려가려는 곳은 죽음보다도 더한 곳이야. 진눈깨비보다 질척대고 이 칼 같은 바람보다도 차고 괴로워. 그런 곳에, 나는 너를 데려가려 하는 거야. 미안해, 나를 원망해도 돼. 정말 미안해.


“안녕.”


나의 목소리에 너는 미동도 없었다. 네가 얼어 죽은 것일까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슬픔과 함께 안도감이 차올랐다. 한번만 더. 혹여나 살아있더라도 한번만 더 버텨줘. 부디 내가 너를 데려가지 않을 수 있도록.


“내 이름은 토마스야.”


…아. 네가 움찔거렸다.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너의 까만 눈동자. 희게 바란 어둠보다도 더욱 검은 네 눈동자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그것은 나를 집어 삼키는 듯하다. 나를 끌어내려 갇히게 한다. 그 곳은 슬픔의 구렁텅이인가 혹은 해묵고 지루한 죄책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그 곳으로 데려가야만 했다. 그것이 지긋지긋한 나의 할 일이었다. 무릎을 굽혀 너와 눈높이를 맞춘다. 울 것 같다. 속이 울렁여 토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다정하게 물었다. 이 가장된 다정이 나를, 그리고 언젠가 너를 죽이고 말 것이다.


“많이 춥지?”

“나랑 가자.”

“따듯한 수프와 빵을 줄게. 보드라운 옷과 잠자리도 있어. 함께할 친구들도, 아주 많아.”

“그리고 나도 그 중 하나야.”


네가 빠끔히 나를 올려다본다. 텅 빈 눈동자가 아려웠다. 네가 추위에 부르튼 입술을 껌벅인다. 목소리가 들리질 않아 고개를 숙였다. ‘눈이.’


“눈이… 싫어. …추워.”


그게 내가 들은 너의 첫마디였다.


“…알아. 따듯한 난로를 줄게. 눈 속에서 떨지 않게 해 줄게.”


그러니 ‘자, 내 손을 잡아. 나랑 같이 가자.’ 머뭇머뭇 내미는 손이 내 손 끝에 닿았다. 나는 미루어왔던 숨을 내뱉었다. 꼭 잡아오는 손끝이 얼어있었다. ‘가자.’ 네가 고개를 끄덕인다. 눈발이 휘날렸다. 너의 손을 잡고 차로 향하는 걸음에 얼음덩이가 치인다. 네가 눈이 싫다면 나는 기꺼이 너의 눈이 되리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나는 기꺼이 행복하게 너의 눈이 되리라. 너를 춥게 하는 것들에 대해, 너는 나를 원망해도 좋아.


“내 이름은 토마스야.”

"……민호.“


“그래 민호.”


내가, 너의 눈이 될게.


네 귀에 작게 속삭였다. 그것은 너와 나만의, 비밀스런 약속이었다. 너는 아마 의미를 모를. 나만이 아는.



* * *



“그러고 보니 글레이드에는 눈이 안 오는 거야?”

“아마도? 3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안 오는 거겠지.”


프라이팬이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민호가 대답했다. 평소와 다르게 꽤 순순한 대답이었다. 평소라면 ‘그런 쓸데없는 질문할 시간 있으면 입 다물고 달릴 힘이나 비축하지 그래, 신참.’하는 잔소리가 날아들 법도 했건만. 민호가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었을지도 몰랐다. 대답하는 분위기가 제법 부드러워, 한마디 더 말을 꺼내봄직했다. ‘눈도 오면 좋을 텐데. 겨울 분위기도 날 것 같고 말이야.’ 오랜만에 온 좋은 타이밍을 놓칠까봐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었다. 제가 말을 꺼내놓고도 토마스는 움찔 했다. 똘추야, 좋기는 뭐가 좋냐. 눈 오면 춥지, 작물은 얼어 죽을 테고 우리는 눈밭에 미끄러지며 미로를 달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참 태평한 소리 하는구나. 민호의 퉁박섞인 대답이 귀에 아른거려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망했어. 그러나 토마스는 곧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의외로 대답이 빠르게 돌아오지 않았던 탓이다. ‘민호?’ 흘긋 바라본 민호는 말없이 샌드위치를 씹고 있었다. 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의미를 내포한 침묵이었다. 토마스가 조심스레 이름을 부르자 민호는 그제야 입안에 들어있던 것을 꿀꺽 삼켜내었다. 아주 짧은 침묵. 


“그러게.”


토마스는 귀를 의심했다.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호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어딘가를 바라보듯 시선을 허공에 둔 채였다. ‘…눈이.’


“눈이 오면 좋겠다.”


그 말이 왜 그리도 아프고 벅찼는지, 토마스는 차마 알 수 없어 대답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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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 글/-메이즈러너 at 2014. 12. 30.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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