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민호 : Question (Secondhand serenade 외전 1) + BGM
+민른전에서 판매했던 Secondhand serenade의 외전입니다+
사랑해줘. 나를 사랑해줘. 사랑한다고, 말해줘. 네가, 나를, 사랑, 한다고.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해 네게 사랑한다고만 말했다. 그렇게 서툴렀다. 나의 사랑이란 게 그랬다. 생각해보면 헤어짐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보같이 너를 제대로 원망할 줄도 몰랐다. 마지막까지 ‘사랑해’라고 말했었다. 돌아서는 네게 그렇게 말했다. 너는 말없이 떠나버렸고, 나는 마치 처음 울어본 사람처럼 울었다. 끝내 사랑해달라는 말 한마디를 못했다.
그건 독이었다. 너를 옥죄고, 내 숨통을 틀어막았던 독. 결국 우리는 부식되었다. 망가져 너덜거렸다. 과거의 일이다. 지나갔다는 사실보다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지독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희미해질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손목의 흔적을 되돌아본다. 푸르다. 시리다.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믿었다. 손톱만한 알약 몇 알은 신체의 모든 감각을 무디게 했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은 점점이 닳아들었다. 달은 멈추지 않고 기울었다가 다시금 차올랐고, 의사는 이제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다’고. 흉이 진 모양새가 여전히 날선 칼끝처럼 선명한데도.
사선으로 박힌 금속은 정맥을 온전히 뚫었다. 솟아 오른 것은 이미 죽은 피였다. 깊숙한 곳에 숨어 펄떡이는 동맥마저 끊어내고 싶었다. 살고자 펄떡이는 붉은 혈관이 타인의 것인 양 낯설었다. 한 번 더 난도질 하지 못한 것은, 고통으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지극히 생리적인 반응 때문이었다. 남은 미련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소독약 냄새. 내 몸에는 다른 사람의 피가 채워졌다. 그것으로 내 안의 무언가 변했을까. 그렇다면 죽어버린 나는 어디로 향한 것일까. 내 사랑도 너에 대한 간절함도, 모두 코가 마비될 듯 흘러넘치던 그 붉음에 압사당하고 만 것일까. 혹은 그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영영 돌아오지 못할까.
너는 나를 사랑했었나.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너를 사랑했었나. 그것도, 이제는 모르겠다. 시간은 사금처럼 남은 의문들에 결코 답을 주지 않았다. 모호성을 더할 뿐이다.
종종 기억나지 않는 악몽을 꾼다.
의사의 말대로 나는 괜찮아졌다. 알약은 점차 개수를 줄여가더니, 이내 끝이 났다.
종종 비가 오면 네 노래가 듣고 싶었다.
나는 괜찮았다. 단지 너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생각보다 바뀌는 것은 없었다.
Question.
: Secondhand serenade extra story 1
M, London, U.K.
201X, SEP.
“헉, 비와요!”
“으악! 또? 요 며칠 잠잠하나 했더니.”
“아까까지만 해도 맑았잖아!”
빗방울이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그 작은 소리를 기막히게 잡아낸 것은, 늘 그랬듯 의상 팀의 막내 엘리였다. 한참 진행 중이던 촬영으로 적막하던 스튜디오가 난장판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몇몇은 두껍게 쳐진 커튼을 열어보며 절망적인 현실을 굳이 제 눈으로 재확인하기도 하고, 몇몇은 재빠르게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우산가진 이들에게 달라붙기도 했다. 물론 그 중 가장 속 편한 이들은 한 달이 넘는 런던 생활 끝에 우산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자칭 ‘런더너Londoner’들이었다.
“너희는 런던 온지가 언젠데 아직도 비 오는 거에 놀라? 이쯤 됐으면 우산을 팔다리처럼 모시고 다니던지, 차라리 나처럼 깔끔하게 포기를 하던지 말이야.”
“가뜩이나 공기도 나쁜 런던에서 비 맞고 다니면 탈모 생겨요, 테드씨. 산성비일게 뻔하다구요. 아, 하긴. 이미 빠질 머리카락이 없으신가?”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자칭 넘버 원 런더너, 테드가 앉아있던 의자가 나동그라졌다. 곰에 가까운 덩치를 고려하면 놀라울 정도로 잽싼 테드의 손에 느림보 앙리가 금방 잡힐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매 주 한두 번씩 있는 흔한 일이다. 결말도 늘 똑같았다. 처음에는 낄낄대는 웃음과 놀리는 말로 두 사람의 사소한 다툼에 끼어들던 다른 스텝들도 이제는 두 사람을 공기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코코아? 한편에서 소란을 피우든 말든 태연한 얼굴을 한 제시카가 민호에게 따듯한 머그컵을 내밀었다. 흘긋 바라보며 커피, 하고 대답하자 제시카는 눈썹을 찌푸렸다가 반강제로 그의 손에 따끈한 머그컵을 쥐어주었다. 오늘은 커피 금지야. 카페인 중독 걸려. 어제도 밤 새놓고서. 어깨를 으쓱인 민호는 혀가 아리도록 단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며 등받이에 편안히 몸을 기댔다. 얼떨결에 쉬는 시간이 되어버린 셈이었지만, 점심 이후로 멈추지 않고 작업했으니 마침 쉴 때도 되었다. 으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린 것은 그 때였다. 테드에게 잡힌 앙리의 머리가 사정없이 쥐어뜯겨지는 것을 구경하던 제시카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린애들처럼 왜 저러는지 몰라.”
“저러다 또 같이 우산 쓰고 집에 가겠지.”
“바로 근처에 산댔지, 저 두 사람. 이러나저러나 사이가 참 좋다니까. 아, 당신은 우산 가져왔어?”
“으음…. 다음번엔 설탕은 한 스푼만 넣어줘.”
“너무 태연해서 가져온 줄 알았네. 어떻게 우산을 가져오는 날이 없어? 당신도 런더너 희망자야?”
“그건 아닌데.”
“내 차 타고 갈래? 어차피 내일 야외 촬영도 나랑 같이 가야하잖아.”
“…….”
뭉게뭉게 김이 솟아오르는 코코아를 바라보고 있던 민호가 고개를 돌려 제시카를 바라보았다. 어깨위에 가볍게 얹어진 그녀의 손은 하얗고 가늘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녹색 눈동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민호는 시선을 찬찬히 내려 그녀의 반듯한 쇄골을 바라보다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아니, 그러지 않는 게 좋겠어. 대답은 쉽게 나왔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그녀는 그게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그거 아쉽네, 하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어깨에 올려져 있던 손이 자연스럽게 거두어졌다. 그것을 눈여겨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앙리가 화장실에서 엉망이 된 머리를 다듬고 돌아왔을 무렵, 즉 민호가 홀짝이던 코코아가 바닥을 보일 쯤 촬영은 다시 시작되었다. 비는 우산 없는 이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그 사이 민호는 제게 우산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에게 같은 거짓말을 몇 번 더 되풀이해야 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 * *
수고하셨습니다! 활기차게 마지막 인사를 한 스텝마저 스튜디오를 떠나자 주변은 금세 조용해졌다. 가장 구석에 위치한 희미한 조명 하나만을 켜 놓고서 민호는 커피를 끓였다. 편안한 어둠이 허공에 안개처럼 퍼져있었다. 한밤중이라도 된 것처럼 캄캄했지만 시간은 고작 7시였다. 비구름 때문이다. 커피포트에서 부글부글 물 끓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딱, 하고 스위치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향기가 내부를 가득 채웠고, 민호는 으슬거림을 느끼고서 서랍장에 넣어두었던 담요를 꺼내들었다. 그럴만한 계절이 되었다. 여름은 느린 듯 금세 지나가버리곤 했다. 늘 체감하는 것 보다 반 박자정도 빨랐다. 자신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쏟아지는 빗소리는 부러 틀어놓는 음악보다도 자연스럽게 그림자와 어울렸다. 딱히 무언가 하려고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의자의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젖혀놓고서 온 몸의 힘을 쭉 빼고 누워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물론 아니었다. 그저 빗소리가 듣고 싶었다. 의사는 늘 민호가 너무 생각이 많은 타입이라고 말하곤 했다. 흘러넘치는 생각을 주워 담지 마시고 그냥 버려버리세요. 떠오르는 것도 막으려 하지 마시고요. 그만 생각해야지, 하고 의식해버리는 것이 민호씨같은 타입에게는 더욱 큰 문제가 돼요.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때는 또 그런대로. 그냥 둬 버리세요. 흐릿해지는 의사의 목소리와 또렷하게 기억나는 목소리가 뒤섞였다. 웃어줘요. 그게 잘 어울려. 기껏 내려놓은 커피가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민호는 희미한 빛이 어른거리는 수면 위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보고 싶었어. 이번에 그는 도망치는 자신을 굳이 잡지 않았다. 커버 촬영 일정은 뒤로 미루어졌고, 촬영 자체를 거부하는 민호를 말리며 에이전시는 유예기간을 두었다. 그날 이후로 이주일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입술에 닿는 커피는 평소보다 썼다. 시간은 의식하지 못하는 새 흘러가 버렸다.
슬슬 집에 가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까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그러기가 싫었다. 처음에는 제시카의 제안을 거절하려 꾸며냈던 말이었지만 몇 번 반복하다보니 정말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산을 들고 자신을 찾아올 누군가를, 나는.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건, 그냥 습관이었다. 고칠 수 있지만 고치지 않고 내버려둔 습관. 그는 주로 우산보다는 우비를 입었고, 그냥 비를 맞을 때도 많았다. 우산은 들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들고서 촬영을 하기에는 더더욱 불편하다. 지금이야 이렇게 스튜디오 안에서 마음 편하게 작업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실내 작업은 그에게 도리어 드문 일이었다. 옛날에 그 사실을 안 뉴트는 벌컥 화를 냈었다. 아니,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리고 실제로 민호가 하늘 사진을 찍겠답시고 숲 속에서 밤새 가랑비를 맞고 들어와 앓아 누운 날부터, 뉴트는 부지런히 우산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바쁜 와중에도 촬영 장소에 들러 우산을 던져놓고 가거나, 멀리 떨어져 있을 때조차 일기예보를 살펴보고 문자를 남겨놓았다. ‘우산 꼭 챙겨.’
목에 모래를 쑤셔 넣은 듯 깔깔한 느낌이 났다. 차가워진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제 삶은 온통 조악한 변명투성이다. 발이 푹푹 잠기는 늪 위를 걸어가는 것 같았다. 앞으로 걸을수록 잠겨 들 뿐이다. 왜 그 날, 그의 공연장에 찾아갔었어? 왜 반지를 두고 나왔지? 왜, 자신을 붙잡는 에이전시를 더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나. 왜, 왜.
왜 나는 지금 너를 기다리고 있을까.
똑똑
그리고 너는, 왜 또다시 이런 나를 찾아왔을까.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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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전에 가져와야 했지만 미뤄지고 미뤄진 SHS 외전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변명에 불과하지만... 원래 여행지에서 틈틈히 써놓았던 글이 태블릿고장으로 한번에 날아가는 바람에;;;;; 한동안 글 쓸 의욕을 잃었었네요...ㅇ(-( 뭐, 여행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했고요....
너무 오랜만에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많이 어색하고 두서없네요. 제가 썼던 글인데 제 글 같지도 않고.... 저 뿐만 아니라 SHS 읽어주신 분들도 본편 내용을 다 까먹으셨을것 같은...그런 느낌이지만.... 너그러이 봐주시고...이어지는 2편은 정말! 곧!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