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wn

w.뷸(@maze_BU)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는 순간 악몽에서 튕겨지듯 깨어났다. 번쩍 뜨인 눈꺼풀 위로 햇살이 쏟아져 세상이 하얗게 바랬다. 물론 색을 되찾는 것은 금방이었으나, 강렬했던 순간의 빛이 불쾌한 꿈마저 지워버린 것일까. 어떤 내용이었었는지 도통 기억나질 않았다. 그저 대단히 유쾌하지 않은 꿈이었다는 점만이 분명했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해먹에 기대앉았다. 새벽이다. 글레이드 안에서의 시간은 유난히 빨리 흘러가는 듯 느껴지는 경향이 있었다. 매일이 반복되는 일상, 그 물에 잠긴 듯 한 안온함 때문일 테다. 그러나 그는 오늘 문득 탄식을 뱉었다. 오늘 또한 그런 날들 중 하나였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 민호는 알비와 함께 미로로 들어갔다. 벤이 불시에 그리버에게 공격당한 후로, 모두가 미로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가지마, 민호. 그는 그날 밤 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제발 가지마. 네가 사라질까 두려워. 그날의 벤처럼 너를 장대로 밀어 저 미로 속에 우겨넣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해. 사라지지마. 제발, 부탁할게. 가지마. 날 혼자 두지마.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는 손을 들어 제 마른 뺨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을 순간임을 알고 있다. 아마 내가 그리 말했어도 너는 그저 웃으며, 그리 환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겠지. 꼭 돌아올게 뉴트. 나는 꼭 돌아올 거야, 언제나처럼. 아마도 그는 그리 대답했을 터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말이라도 해 볼걸. 아니, 네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빌어서라도 너를 말렸어야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간은 오지 않았을까. 네가 없는 밤. 시간은 평소와 달리 더디게만 흘렀다. 잠에 들고 깨기를 반복하고 불유쾌한 꿈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것은 그를 점점 더 오랜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그날 밤 나는 그저 말없이 민호의 옷깃을 잡았고, 왜 그래, 평소와 다르게 조금은 다정한 투로 물어오는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지. 아아, 그것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오만이었는가. 네가 언제나처럼 나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그 자만심은. 그것이 일련의 모든 사태를 불렀다. 나의 어리석은 판단이 너를 죽였다. 노을이 붉게 내리고 야속한 해가 무심히도 저물어갈 쯤 나는 미로의 입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민호. 오래도론 뜬 눈동자가 건조하게 말라갔다.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네가 미로 저편에서 나타날 것 같아서. 차마 눈을 깜박일 수 없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네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너는 돌아오지 못했지. 정신을 잃은 알비를 부축한 너의 외침, 나는 이제껏 그 순간만큼 내가 절름발이임을 저주해본 적이 없었다. 빌어먹을 이성이 너에게로 가려는 나를 말렸다. 절름발이인 네 새끼는 그에게 짐덩이가 될 뿐이라는 현실이 찬물처럼 뒤집어 씌어졌다. 그리고 내가 겁쟁이처럼 벌벌 떨고 있는 동안 토마스는 당당히도 너에게로 뛰어 들어갔다. 토마스! 나는 외쳤고 미로는 닫혔다. 허무하게도 그랬다.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너를 집어삼킨 그 거대한 미로에게 제대로 악 한번 써보지 못하고, 발길질조차 해보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주변의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알비도, 민호도 없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말 없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다들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달라는 듯, 어린 아이같은 표정들. 이를 악물었다. 돌아왔어야지, 내게로 돌아왔어야지. 너만은 내게로 돌아왔어야지. 나는 그것이 당연한 귀결인 줄 알았다.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약속이었다고, 너는 돌아오고 나는 기다리고.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너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지. 민호, 왜.

‘해산해, 해산! 다들 자기 자리들로 돌아가!’

나에게로 오지 않았어. 나를 이리 혼자 두어.

…아니 그러나 이젠 괜찮아. 다 용서해. 나는 다 용서할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 돌아와. 죽지 마.



* * *

 

그때의 그 망설임이 과연 그를 위한 것이었는가, 혹은 치졸하게 살고자하는 스스로의 욕심이었는가 이제는 그것마저도 알 수 없었다. 민호가 알비를 버리고 제게로 돌아오길 바랐던 마음, 그 비열한 욕심은. 그는 절뚝이며 새벽으로 나아갔다. 아직 하늘은 파랗다. 동이 채 뜨기도 전이었다. 그는 굳게 닫힌 미로의 문 앞에 섰다. 제발 바라건대 이 문이 열리고 네 까만 눈동자를 볼 수 있기를. 간간히 웃을 때 드러나는 볼우물, 뉴트, 하고 부르던 네 목소리에는 아직까지도 어색한 모국어의 느낌이 깔깔하게 남아있었다. 접히는 눈꼬리, 멋쩍은 듯 씩 웃는 얼굴. 아… 이 순간조차 알비와 토마스의 안위보다도 오로지 너만이 떠올랐다.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치밀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돌아와. 돌아오기만 해. 밤새도록 달려 지친 너를, 그나마 내게 남은 온전한 이 두 팔로 그러안아 줄테니. 네 헐떡이는 숨결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것이면 충분해, 민호. 그러니까…. 

 

어느새 미로의 앞으로 하나 둘 소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제 막 해는 떠오르기 시작하고, 빛나는 하늘. 푸르스름한 새벽을 헤치고 붉그스름한 태양이 얼굴을 비추는 순간. 끼릭,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곧 우르릉. 천둥이 치는 듯이 거대한 미로가 땅과 마찰하며 울려대는 묵직한 소음. 자, 이제 드디어 우리가 다시 만날 시간이야, 민호. 기다리고 있었어. 짧았지만 너무도 긴 시간이었지. 네가 없는 낯선 밤의 별들을 세아리던, 낡은 새벽을.

나는 그냥 너를 보면 가장 먼저.

 

어서와, 하고

마치 평범한 여느 날이었던 것 처럼 그렇게.


Posted in : 글/-메이즈러너 at 2014. 12. 30.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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